판단을 멈추고 호기심을 품다
(2-9번 역량)
황현호 원장
국제코치훈련원 원장
한국부부행복코칭센터 원장
아주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숭실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전, ICF코리아챕터 회장
"원장님, 제 고객은 지난주에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정말 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코칭 슈퍼비전 시간에 한 초보 코치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3주째 같은 문제로 코칭을 받는 고객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코치에게 되물었다. "그 고객이 정말 '변할 생각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코칭 교육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문제는 코치 자신의 판단이다. 고객이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도 전에, 코치가 먼저 고객을 판단의 틀에 가두어버린다. "저 사람은 의지가 약해", "이 고객은 핑계만 대", "또 못하겠다고 하네." 판단이 코칭을 장악하는 순간, 코칭은 멈춘다. 고객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코칭의 근본 철학이 무너지는 것이다.
판단은 왜 코칭을 멈추게 하는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결과가 있다. 7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호기심 정도를 측정한 후 5년 뒤 생존율을 조사한 결과, 연령과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 호기심은 단순히 지적 탐구를 넘어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다. 코칭에서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이 살아있는 코칭 관계는 고객의 내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반대로 판단은 코칭 관계를 경직시킨다. 코치가 "이 고객은 이런 유형이야"라고 단정하는 순간, 그 고객은 코치의 마음속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고정된 존재가 된다. 코칭 세션에서 고객이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도 코치는 이미 예상된 패턴으로 해석해버린다. 이는 고객에게도 전달된다. "이 코치는 나를 이미 단정지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고객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감추게 된다.
2025년 ICF 핵심 역량이 강조하는 호기심
2025년 ICF 핵심 역량에 새롭게 추가된 2-9번 역량 "자신, 고객, 그리고 코칭 과정에서 개방성과 호기심을 육성한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명확히 반영한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육성한다(Nurtures)'이다. 호기심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원에 물을 주듯, 코치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키워내야 하는 마음의 태도다.
이 역량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코치 자신을 향한 호기심이다.
코칭 세션에서 고객의 말이 이해되지 않거나 나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판단 모드로 전환된다. 한 연구에서 호기심이 높은 어린이들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지능테스트 점수가 12점 더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호기심은 단순히 성격이 아니라 학습 능력과 직결된다. 코치에게도 마찬가지다. 고객에 대해 판단하는 대신 "나는 왜 저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라고 자기 자신에게 궁금해할 때, 코치는 자신의 편견과 맹점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라이프코칭 교육 현장에서 한 코치는 "저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더라고요. 알고 보니 제 어머니가 늘 그렇게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어요"라고 고백했다. 자신의 반응에 대한 호기심이 자기 인식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둘째, 고객을 향한 호기심이다.
고객들은 종종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가혹한 비판자가 된다. "저는 의지가 약해요", "저는 리더감이 아니에요." 코치는 고객이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궁금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하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 의지가 작동했고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았는지 탐구해볼까요?" 이런 질문을 받은 고객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한 코칭 사례에서 40대 중반의 직장인 고객은 "저는 항상 중요한 순간에 회피해요"라며 자책했다. 코치가 "회피한다는 표현 대신, 그 순간 당신은 무엇을 선택했나요?"라고 물었을 때, 고객은 "안전을 선택했어요. 실패가 두려워서요"라고 답했다. 판단의 언어에서 호기심의 언어로 전환하자 고객 스스로 자신의 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셋째, 코칭 과정에 대한 개방성이다.
때로는 코칭 대화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침묵이 길어지기도 한다. 이때 코치가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라며 조바심을 내면 과정을 통제하게 된다. 하지만 과정 자체에 호기심을 가지면 "지금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 당신의 목표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요?"라고 물을 수 있다.
호기심을 육성하는 구체적 방법
그렇다면 코칭 교육과 훈련 현장에서 어떻게 호기심을 육성할 수 있을까?
첫째, 판단적 언어를 탐구적 언어로 바꾸는 연습을 한다.
"이 고객은 계속 핑계를 댄다" 대신 "이 고객이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장애물의 본질은 무엇일까?"로 리프레이밍한다. 코치 훈련 과정에서 판단적 표현을 발견할 때마다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변환하는 워크시트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둘째, '모른다'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연습한다.
초보 코치들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전문 코치는 "나는 모른다. 그래서 궁금하다"는 자세로 고객을 만난다. 인간의 호기심은 보상이 없어도 작동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호기심과 구별된다. 코칭에서의 호기심도 마찬가지다. 즉각적인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탐험하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다.
셋째, 자기 성찰 일지를 작성한다.
코칭 세션 후 "내가 오늘 판단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그 판단을 호기심으로 전환했다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를 기록한다. 이는 코치의 자기 인식을 높이고 판단의 패턴을 발견하게 한다.
넷째, '경이로움의 시선'을 연습한다.
어린아이가 처음 보는 나비를 신기해하듯, 매번 고객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 "이 고객에 대해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세션 시작 전 스스로에게 던진다.
호기심이 만드는 안전한 공간
호기심은 두려움을 이긴다. 우리가 무언가를 궁금해할 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코치가 안전한 호기심의 공간을 만들어줄 때, 고객은 비로소 방어막을 내리고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탐험할 용기를 얻는다.
한 코칭 사례에서 30대 여성 고객은 "저는 항상 사람들을 실망시켜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코치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한데요"라고 물었을 때, 고객은 10년 전 직장 동료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판단이 아닌 호기심으로 접근하자 고객은 자신의 핵심 믿음을 발견하고, 그것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당신의 코칭 세션은 지금 '마침표'로 가득 차 있는가, 아니면 '물음표'로 열려 있는가? 코칭의 본질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탐험하는 것이다. 판단을 내려놓고 호기심을 품을 때, 코치와 고객 모두 예상치 못한 통찰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성찰 질문
1. 최근 코칭 세션에서 고객의 반복되는 행동에 대해 "이 사람은 원래 이래"라고 단정 짓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면 나눠주세요.
2. 고객이 자기 자신을 한계 짓는 말을 할 때, 그것을 호기심 어린 탐구 질문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질문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참고문헌
ICF Core Competency 2.09 Nurtures openness and curiosity in oneself, the client, and the coaching process.
ICF 핵심 역량 2.09 자신, 고객, 그리고 코칭 과정에서 개방성과 호기심을 육성한다.
호기심에 대한 오해와 진실, Samsung Newsroom Korea,
https://news.samsung.com/kr/전문가-칼럼-호기심에-대한-오해와-진실
다섯 가지 차원의 호기심,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https://www.hbrkorea.com/article/view/atype/ma/article_no/1214/page/5/category_id/2_1